[수필] 마음속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정 여 민 ( 경북 영양 수비초 6학년 / 2015년 )
여름의 끝자락에서 바람도 밀어내지 못하는 구름이 있다. 그 구름은 높은 산을 넘기 힘들어 파란 가을하늘 끝에서 숨을 쉬며 바람이 전하는 가을을 듣는다. 저 산 너머 가을은 이미 나뭇잎 끝에 매달려 있다고 바람은 속삭인다.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집에는 유난히 가을을 좋아하고 가을을 많이 닮은 엄마가 계신다. 가을만 되면 산과들을 다니느라 바쁘시고 가을을 보낼 때가 되면 ‘짚신나물도 보내야 되나보다’ 하시며 아쉬워 하셨다. 그러시던 엄마가 2년 전 가을, 잦은 기침으로 병원을 찾아다가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해보라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 가족들은 정말 별일 아닐거라는 생각에 오랜만에 서울구경이나 해보자며 서울길에 올랐다. 그러나 예상과 다른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암3기’라는 판정이 나왔다. 꿈을 꾸고 있다면 지금 깨어나야 되는 순간이라 생각이 들 때 아빠가 힘겹게 입을 여셨다.
“혹시 오진일 가능성은 없나요? 평소 기침 외에는 특별한 통증도 없었는데요.”
무언가를 꼴똘히 보던 그때의 선생님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미소를 우리에게 보이셨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빛이 차단되는 것 같은 병원을 우리 가족은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스쳐지나가도 우리의 시간은 멈추고만 있는 것 같았다. 집에 오는 내내 엄마는 말을 걸지도 하지도 않으며 침묵을 지켰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토할 것 같은 울음을 저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내었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나 안타까워 나도 소리내어 울었다. 왜 하필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겨야만 하는 것일까?
엄마는 한동안 밥도 먹지 않고 밖에도 나가시지도 않고 세상과 하나둘씩 담을 쌓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엄마는 어느 날, 우리를 떠나서 혼자 살고 싶다 하셨다. 엄마가 우리에게 짐이 될 것 같다고 떠나신다고 하셨다. 나는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울분이 터져나왔다.
“엄마가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엄마는 그러면 여태껏 우리가 짐이였어? 가족은 힘들어도 헤어지면 안되는 거잖아. 그게 가족이잖아! 내가 앞으로 더 잘할께!”
내 눈물을 보던 엄마가 꼭 안아주었다. 지금도 그 때 왜 엄마가 우리를 떠나려 했는지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아빠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공기 좋은 산골로 이사를 가자고 하셨다. 우리가 이사한 곳은 밤이면 쏟아질 듯한 별들을 머리에 두르고 걷는 곳이며, 달과 별에게도 마음을 빼앗겨도 되는 오지산골이다.
이사할 무렵인 늦가을의 산골은 초겨울처럼 춥고 싸늘하게 여겨졌지만 그래도 산골의 인심은 그 추위도 이긴다는 생각이 든다. 어스름한 저녁, 동네 할머니가 고구마 한 박스를 머리에 이어 주시기도 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베트남 아주머니가 봄에 말려 두었던 고사리라며 갖다 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에 함께 아파해 주셨다.
이곳 산골은 6가구가 살고, 택배도 배송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사람 얼굴도 못 보겠구나 생각할 무렵, 빨간색 오토바이를 탄 우체국 아저씨가 편지도 갖다 주시고, 멀리서 할머니가 보낸 무거운 택배도 오토바이에 실어 갖다 주시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너무 감사해 하셨는데 엄마가 암환자라는 얘기를 들으셨는지 ‘꾸지뽕’이라는 열매를 차로 마시라고 챙겨주셨다.
나는 이곳에서 우리 마음속의 온도는 과연 몇 도쯤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 하지도 않고,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이 상처 받지도 않는 온도는 ‘따뜻함’이라는 온도란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지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 질 수 있는 따뜻함이기에 사람들은 마음을 나누는 것 같다. 고구마를 주시던 할머니에게서도 봄에 말려두었던 고사리를 주었던 베트남 아주머니도,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산골까지 오시는 우체국 아저씨에서도 마음속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산골에서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산골에서 전해지는 따뜻함 때문에 엄마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다시금 예전처럼 가을을 좋아하셨음 좋겠다고 소망해 본다.
“가을은 너무 아름다운 계절같아!” 하시며 웃으셨던 그때처럼 말이다.
[시] 꽃
정 여 민
꽃이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먼저 본 줄 알았지만
봄이 쫓아가던 길목에서
내가 보아 주기를 날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 건 줄 알았지만
바람과 인사하고 햇살과 인사하며
날마다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내가 먼저 웃어 준 줄 알았지만
떨어진 꽃잎도 지켜내며
나를 향해 더 많이 활짝 웃고 있었다.
내가 더 나중에 보아서 미안하다.
[설명] 글은 마음의 얼굴
수필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는 2015년도에 우체국이 주최한 전국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8,042 : 1의 경쟁을 뚫고 대상을 받은 정여민 군의 글입니다. 정여민군은 당시 13세살로 6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정여민군은 시상식에도 참여를 못했습니다. 물론 일부터 참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전 9시에 경북 영양군 산골에서 출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일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산 속에서 고립되는 바람에 시상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8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입상자들 시상식 기념 사진에는 정여민군이 빠져 있습니다.
정여민군의 이야기는 SBS <영재발굴단>에도 소개되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꽃>이라는 시는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린 정여민군의 시입니다. 정여민군의 시집이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라는 제목으로 2016년 8월에 <김영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시집에는 위의 글 외에도 <소망의 병> <산골의 봄> <봄의 징검다리> <노란 민들레> <별 그리고 어둠> <별이 마음에 박힌 아이> <가을 그리기> <산골 빈집> <가을 서리> <겨울 소나무> <별빛 꿈을 꾸며> 등 100편 가까운 정여민군의 주옥 같은 시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정여민군의 글을 보면, 문장의 힘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역시 글의 힘은 작가의 삶의 태도와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글, 멋진 문학적인 표현은 미사여구로 글을 꾸민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소 작가의 삶의 태도와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글이 읽는 독자로 하여금 커다란 울림을 준다고 봅니다. 아름다운 문장은 작가의 아름다운 생각에서 나오고,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글은 작가의 진솔하고 아름다운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위와 같은 표현력은 보통 일반 사람들에게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문장이죠. 아무리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표현력과 문장력은 작가 본인의 소박한 삶과 맑은 의식의 상태가 아니고서는 결코 표출해 낼 수가 없습니다. 학교 공부, 학원 공부, 과외 공부에 매진하는 도시의 아이들에게 비록 도시의 아름다운 글감들을 소재로 글을 쓴다고 할지라도 저런 글은 탄생할 수 없습니다.
글은 작가의 마음이자 삶 자체입니다.